[인터뷰] 82km와 82세, 길 위에서 참어머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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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대에서 도보 정성을 출발하는 UPA생도들
선문대에서 도보 정성을 출발하는 UPA 생도 4명(왼쪽부터 오카노 켄신,호리이 미치요, 아이지와 마사히로, 소에지마 요시후미

아직 나무의 푸르름이 남아 있던 2025년 9월 말, 서울구치소 앞 풍경은 어느새 울긋불긋 물들고 있었다. 무더위의 끝자락에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이 불었고, 식구들의 마음에는 이른 서리가 내려앉았다. 가로막힌 버스, 무표정한 경찰의 응대 속에서도 작은 울림이 시작되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그러나 그 울림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찬양과 기도, 눈물과 간구의 소리는 세상의 비난을 덮고, 길을 지나던 사람들의 마음을 멈추게 했다. 바로 그때, 네 명의 젊은 생도들이 한 결심을 했다. “걸어서, 참어머님을 찾아가자.” 그들이 걸은 82km, 참어머님의 연세와 같은 거리였다.

오카노 켄신(28), 소애지마 요시후미(23), 아이자와 마사히로(24), 호리이 미치요(23). 일본 UPA(UP Academy) 생도인 이 네 청년은 한국이 추석 연휴로 들뜬 그 시기에, 가족 대신 ‘길’을 택했다. 이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런 ‘도보 정성’을 계획했는지, 그리고 길 위에서 느낀 것과 도착 후 변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TP 매거진이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편집자 주>

Q. 도보 정성의 일정을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2025년 10월 5일 오전 8시, 네 명의 생도들이 아산 선문대학교 캠퍼스를 출발했습니다.첫째 날, 약 27km를 걸어 저녁 6시 무렵 평택에 도착해 근처 찜질방에서 첫날 밤을 보냈습니다. 둘째 날은 아침 7시 출발이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하루 종일 걸어 39km를 이동, 밤 11시경 수원에 도착했을 때는 꼬박 16시간을 내리 걸은 상태였고, 이날은 수원 학사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피로를 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날인 7일 아침, 다시 수원을 출발한 저희는 16km 구간을 걸어 저녁 6시경 마침내 서울구치소에 도착했습니다. 3일 동안 82km, 참어머님의 연세와 같은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정성으로 내딛은 여정이었습니다.

Q. 어떤 계기로 이런 정성을 기획하게 되었나?

원래 저는 추석 연휴 기간에 UPA 후배들과 함께 미국에 가서 경제 복귀 활동을 할 계획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참어머님께 도움이 되고 싶고, 정성을 다하고 싶은 마음으로 세운 계획이었죠. 그런데 출국을 앞두고 “참어머님이 구치소에 계신 동안은 당분간 조용히 정성을 드리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결국 미국행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일이었기에 솔직히 많이 아쉬웠습니다. 일본에 돌아가려고 해도 이미 추석 기간과 맞물려 항공권 가격이 너무 올라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다면 이 기간 동안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정성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철야정성에 참석했는데, 연아님께서 “추석 기간에는 참어머님의 면회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한국의 추석은 가족이 함께 모여 따뜻한 밥상을 나누는 명절인데, 참어머님께서는 그 시간을 홀로 보내신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 그래서 직접 만나 뵙지는 못하더라도, 그리움의 마음으로 걸어서 구치소까지 찾아뵙는 정성을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참어머님 찾아 삼천리’라는 농담 같은 말이었지만, 그 말 속에는 정말로 간절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심원에서 “작은 정성이라도 지금은 꼭 필요한 때다.”라고 들었던 내용이 상기되며 제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그렇게 저의 ‘도보 정성’은 시작되었습니다.

출발 첫날의 힘찬 발걸음
❶출발 첫날의 힘찬 발걸음
즐거운 식사시간
❷즐거운 식사시간

Q. ‘도보 정성’,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텐데, 주변 반응은 어땠나?

주변에서는 “차로도 갈 수 있는데 굳이 왜 걸어서 가느냐?”, “다른 방법으로 정성을 드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죠. 하지만 제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 어떤 방식보다 ‘직접 걸어서 가는 정성’이 지금 제게 가장 진심 어린 표현이라 느꼈습니다. 물론 기도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지만, 그때의 저는 단순히 무릎 꿇은 기도가 아닌, 온몸으로 드리는 정성을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많은 형제자매들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지쳐 있었기에, 누군가가 조금은 ‘무모하다’고 느낄지도 모를 도전을 통해 조금이나마 용기와 희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신앙, 그것이야말로 참어머님께 올리는 가장 솔직한 사랑의 표현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출발지인 아산 선문대에서 서울구치소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보니 놀랍게도 82km였습니다. 그 숫자가 참어머님의 연세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하늘이 저희 발걸음에 함께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하늘부모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보 정성이 홀리마더한 참어머님과 영계에 작은 감동과 희망이 되기를, 무엇보다 그분께 드리는 효도의 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Q. 걸어오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걷는 동안 저는 수없이 참어머님을 떠올렸습니다. 다리가 저릴 때마다, 비가 세차게 내릴 때마다, 제 마음속에는 자연스럽게 참어머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참어머님은 지금까지 육신과 마음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뎌오셨을까?” “얼마나 많은 눈물로 인류를 품으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저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습니다. 혹시 지금도 아프신 곳은 없으신지, 식사는 잘하고 계신지, 그저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드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마음 하나로 걸었고, 그 마음 하나가 저를 끝까지 이끌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도보 정성은 단지 저 혼자만의 결심이 아니라 뒤따라올 2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신앙의 발자취이기도 했습니다. 참어머님을 향한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지는 삶’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몸으로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Q.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솔직히 말하면, 3일 내내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둘째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졌습니다. 길 위를 걸을 때마다 신발 속에서 물이 철벅거렸고, 마지막 10km를 남겼을 때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옷이 젖은 채로 차가운 바람을 맞아야 했습니다. 몸이 떨리고,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참어머님이 더 깊이 떠올랐습니다. “이 고통이 참어머님께서 걸어오신 길의 아주 작은 일부라도 닮을 수 있다면…” 그 마음 하나가 저를 다시 일어서게 했습니다. 추위는 여전했고,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가슴 속에서는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올랐습니다. 그건 ‘그리움’이었고, 동시에 ‘감사’였습니다. 그 마음 덕분에 저는 힘든 순간들을 끝까지 견딜 수 있었습니다.

Q. 함께 걸었던 다른 동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힘든 순간마다 제 옆에는 함께 걸어주는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고생조차 ‘감사’로 바꾸는 작은 놀이를 만들었습니다. 이름하여 ‘감사 대회’. 다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우산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그리운 참어머님께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에도 감사했습니다. 비는 쏟아졌지만, 우리 입에서는 감사의 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젖은 신발 속에서도 웃음이 번졌고,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다음 신호등까지 짐을 들고 가는 ‘벌칙 게임’이 우리 여정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감사를 찾다 보니 힘든 환경 속에서도 하늘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이 늘 우리 곁에 함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비바람 속에서도 마음만큼은 한없이 따뜻했습니다.

Q. 도보 정성 중 만난 사람이 있었나?

많은 사람을 만난 건 아니었지만, 도보 정성 이야기를 들은 몇몇 분들이 편의점 쿠폰이나 카페 쿠폰을 보내주셨습니다. “응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그 짧은 메시지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길 위에서 외롭고 힘든 순간마다 그 마음들이 제 발걸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었습니다. 낯선 이들의 소중한 배려 속에서 하늘부모님께서 저희 여정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따뜻한 위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분들의 마음이 저희 정성의 발길이 하늘의 미소처럼 함께 빛나고 있었습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무엇이었나?

두 장면이 지금도 선명히 기억에 남습니다. 첫째는 40km 지점을 지나쳤을 때, 둘째는 서울구치소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40km를 넘기자, ‘아직도 절반이나 남았구나.’ 하는 절망감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걸어온 만큼 다시 그 먼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몸도, 마음도 한계를 넘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마다 참어머님이 떠올랐습니다.육신의 고통을 넘어, 하늘부모님의 뜻만을 따라 걸어오신 참어머님의 생애를 생각하니 ‘포기’라는 단어는 제 머릿속에서 단 한순간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마음속에는 조용한 다짐이 새겨졌습니다. “이 길의 끝에서, 반드시 참어머님을 향한 효정을 드리자.” 그리고 마침내 구치소 앞에 도착했을 때, 그동안의 피로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여기까지 걸어온 것에 대한 성취감보다 인류의 어머니이신 참어머님께서 이곳에 계신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담장 너머로 참어머님을 떠올리는 순간, 그리움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습니다. “어머님, 괜찮으신가요… 추우시진 않으신가요…” 그 마음 하나로 두 손을 모아 기도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참어머님께서도 지금 이 순간, 우리 자녀들을 그리워하시며 그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계시다는 것을. 그리움 속에 피어난 그 사랑이 세상을 품는 ‘효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치소 앞에서 정성들이는 식구님과 함께
구치소 앞에서 정성들이는 식구님과 함께

Q.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추석 기간이라, 솔직히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구치소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식구님들이 정성을 드리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긴 여정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어머님을 위해 걸어온 이 길이 헛되지 않았구나.” 따뜻한 미소로 저희를 맞아주시는 식구님들의 모습 속에서 가족의 사랑과 신앙의 연대를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현장에는 식구가 아닌 분들도 있었습니다. 가끔은 거친 말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지요. 하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그분들을 향해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언젠가는 이분들도 참어머님의 가치를 깨닫고, 하늘부모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 주세요.” 그날, 구치소 앞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저는 오히려 하늘의 따뜻한 품을 느꼈습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그 자리는 분명 ‘하늘의 가족’이 함께한 거룩한 순간이었습니다.

Q. 도보 정성이 끝나고 주변 반응은 어땠나?

도보 정성이 끝난 후, 정말 많은 분들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큰 힘을 얻었습니다.” “나도 도전하고 싶어졌어요.”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저에게는 축복이자 하늘의 격려처럼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82km를 걸은 여정이 아니라,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또 다른 정성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큰 보람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정성은 결코 혼자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전해지고 이어지는 것이라는 것을요.

Q. 도보 정성 전과 후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 여정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기도도 중요하지만, 정성을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희망이 생기고, 그 희망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습니다. 정성은 마음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일 때 세상을 따뜻하게 비춥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은 도보 정성이 더 널리 퍼져나가, 많은 식구님들의 삶 속에 사랑과 믿음의 불씨로 남기를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지금 저희는 신학을 전공하며, 말씀을 배우고 마음을 단련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가 끝나면 ‘신탑건’ 선교사로 파견될 예정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형제자매들에게 힘이 되고 가족에게는 믿음의 등불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세상 앞에 사랑하는 참어머님을 당당히 증거하고자 합니다. 신탑건 선교활동은 물론, 유튜브나 거리 유세, 다양한 활동을 통해하늘의 뜻과 참어머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참어머님께서 “저 아이는 나의 자랑스러운 자녀다.” 라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믿음과 실천으로 하늘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Q. 참어머님께 드리고 싶은 메시지.

참어머님, 부족한 저희이지만 참어머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기꺼이 해드리고 싶은 효정의 아들입니다. 지금 세상이 혼란스럽고, 주위를 둘러싼 환경이 어렵더라도 저는 문신출ㆍ문신흥 천애축승자와 함께 온 세상 앞에 참어머님을 증거하는 참된 천일국의 지도자가 되겠습니다. 참어머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하늘의 보호와 축복 속에서 언제나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오카노 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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