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마음을 울린 ‘You are My 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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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지으시는 참어머님
아래 말씀은 참어머님 자서전 ‘인류의 눈물을 닦아주는 평화의 어머니’ 중 일부를 발췌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미국 뉴욕의 허드슨강 인근에 수련소를 마련했을 때 그곳 이름을 벨베디어(Belvedere)라 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할 수 있도록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울창한 그곳에서 1970년대부터 식구들이 원리말씀을 바탕으로 수련을 받았습니다. 우리 부부를 만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수련소는 늘 혼잡했습니다.

나는 벨베디어수련소와 이스트가든에 노란 수선화를 많이 심었습니다. 수선화는 추운 겨울을 견디고 얼어붙은 땅을 가장 먼저 뚫고 나와 새로운 계절을 알리는 봄의 전령입니다.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언 땅을 비집고 나오는 새싹의 강인함과 자연의 섭리 앞에 나는 늘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봄이나 한여름에 피는 장미나 백합도 아름답지만 추운 겨울을 이겨 내고 피어나는 수선화의 강인함을 무척 좋아합니다. 나는 참부모의 길, 독생녀 참어머니의 길을 걸어오면서 이 꽃을 참 사랑했습니다.

이 뜻깊은 벨베디어에서 2016년 여름 ‘뉴욕 양키스타디움대회 40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40년 전인 1976년 대회는 통일교회와 문선명, 한학자를 전 세계에 알린 기념비적 대회였습니다. 또한 혼돈과 타락에 빠졌던 미국을 일깨운 중요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나와 문 총재는 동양에서 온 신흥 종교의 창시자로 소수에게만 알려져 있었으나, 반백년이 흐른 지금에는 전 세계가 문선명을 ‘독생자 메시아’로, 한학자를 ‘독생녀 우주의 어머니, 평화의 어머니’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40주년 대회를 ‘하나님이 축복한 미국 가정축제(God Bless America Family Festival)’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식구 3천여 명이 이 행사를 기리기 위해 벨베디어에 모였습니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노래 <그대는 나의 태양(You are My Sunshine)>이 흘러나오자 우리 모두는 숙연하면서도 감격에 겨워 그날의 감동을 되새겼습니다. 나는 감동을 넘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식구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선 청교도 정신이 바로 미국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세계를 보듬기보다는 이기주의와 퇴폐문화가 만연해졌습니다. 나는 미국의 건국정신을 되새기고 참다운 책임을 일깨우기 위해, 혼신을 다해서 청년들과 지도자들을 가르치며 많은 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하늘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79억 인류가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이루고 새로운 심정문화 혁명을 일으켜 하나님의 사랑 앞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1976년 6월 1일의 양키스타디움대회를 어제 일처럼 기억합니다. 미국 각지는 물론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뉴욕 양키스타디움은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날씨는 우리 편이 아니었습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또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스타디움 밖에서 대회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여 무척이나 소란스러웠습니다. 자칫 폭동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연설을 듣기 위해 모여든 사람은 5만 명이 넘었습니다. 돌풍과 함께 쏟아진 비가 대회장을 엉망으로 만들었음에도 의연하게 등장한 우리 부부는 5만 명의 청중뿐만 아니라 전 미국인, 나아가 전 세계인에게 경종을 울렸습니다.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해 ‘미국은 하나님의 소망’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공산주의의 위협과 청소년의 윤리적 파탄을 막지 않고서는 미국에 희망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문 총재가 “나는 미국의 의사요 소방관으로 왔다‘고 힘주어 말하자 청중들은 큰 박수로 응답했습니다. 그동안 쉬쉬하면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부끄러운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했습니다.

행사가 열리기 두 달 전부터 우리 식구들은 전 세계에서 기도를 올렸고, 미국으로 건너온 식구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곳곳을 다니며 열심히 대회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 60일은 잠들어 있는 미국을 일깨우는 기간이었고, 공산세력을 막아내 민주세계를 부활시키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청소년들의 윤리적 파탄을 막아내는 방파제가 되느냐, 못 되느냐의 갈림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소명과 달리 모진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져 대회장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현수막은 찢겨 나갔고 포스터는 물에 젖어 흘러내렸습니다. 무대의 집기마저 널브러져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빗물에 젖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스타디움 밖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온갖 야유를 퍼붓고 비난의 고함을 질렀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와 함께하시는가,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거센 비와 반대자들의 비난, 아우성은 오히려 우리를 보다 더 굳건하게 해주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에 받아 온 그간의 고난과 탄압에 비하면 반대자들의 함성은 되레 응원가로 들렸습니다. 우리는 비를 흠씬 맞으면서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누군가 노래 한 소절을 불렀습니다. ”You are my sunshine, my only sunshine. You make me happy when skies are gray.“

그것을 신호탄 삼아 모두 한 마음으로 <그대는 나의 태양>을 불렀습니다. 한 사람의 노래는 곧 웅대한 합창이 되어 스타디움에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빗물 섞인 기쁨의 눈물이 철철 흘러넘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곁에 찾아오셨습니다. 천지를 뒤덮고 있던 어둠이 걷히고 먹장구름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비치면서 대회장은 서서히 밝아졌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대회는 그 햇살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은 연단에 오르기 전 기도를 마치고 나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당신의 정성과 기도 덕분에 내가 오늘 단상에 올라갑니다.“ 남편은 구름 사이로 솟은 햇살보다 더 따스한 감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죽음의 경계선과도 같은 어둠을 뚫고 광명천지로 부활한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얼굴 위의 차가운 빗방울을 떨어내고 남편에게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계 구원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고, ’구세주가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과 용기로 대회는 큰 성공을 거둬 미국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통일교회 선교 역사는 물론 모든 종교 역사에서 위대한 발자국을 남긴 대회였습니다. 미국인들이 잊고 지냈던 하나님의 심정을 전하기 위한 우리 부부의 믿음과 원리운동이 미국을 감동시켜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나는 청평 천정궁을 지을 때 수선화를 여러 모양으로 조각했으며 정원에도 많이 심었습니다. 장미나 백합과 달리 강인하고 아름다운 수선화를 사랑합니다. 지금도 겨울 잔설이 녹기도 전에 솟아오르는 새싹을 보면 양키스타디움 대회가 떠오릅니다. 북풍한설을 이겨 내고 새롭게 소생하여 가장 먼저 봄이 왔음을 전하는 수선화는 우리의 평화통일운동에 큰 의미를 지닌 상징적인 꽃으로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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