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고, 구두가 또 없어졌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찹니다. 가난은 사람들에게 간혹 나쁜 마음을 먹게 합니다. 일요일 예배가 끝나면 신발장에 넣어 둔 식구들의 구두가 한두 켤레씩 없어지는 일이 간혹 일어났습니다. 아직 믿음이 깊지 못한 우리 식구일 수도 있고, 통일교인이 아닌 다른 사람일 수도 있었습니다. 교회에 왔다가 슬며시 좋은 구두를 신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차곡차곡 모았다가 그 식구들에게 구두를 사주었습니다. 구두를 신고 간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다시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행사가 열리면 200~300명씩 모였는데, 그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쌀이 늘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큰 가마솥에 보리를 넣고 끓였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행사가 진행되는데 장작으로 불을 때 보리죽을 만들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사발에 죽을 퍼서 나눠 먹으며 식구들은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설렘이나 기쁨보다는 안타까움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보름 전부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준비를 해야 사과 한 개, 사탕 한 알씩이라도 겨우 나눠 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임신했을 때 귤이 유독 먹고 싶었으나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귤이 무척 귀했습니다. 그것을 눈치챈 식구 한 사람이 귤을 사와 그 자리에서 예닐곱 개를 순식간에 먹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눈물이 났는지 모릅니다.
태어나서 성혼을 할 때까지 내가 걸어온 길은 하루도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성혼 후에도 갖가지 풍파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 그리고 사랑의 길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은 생각만 해도 견디기 어려운 가시밭길이었지만 그 무엇도 나를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사탄은 일찍이 예수님과 문 총재를 시험했듯이 나 역시 혹독하게 시험했습니다. 그 가혹하고 지독한 시련을 나는 인내와 헌신으로 이겨 냈습니다. 한편으로 그때는 나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깊이 느낀 때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친히 나타나셔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나는 문 총재가 살아생전에 수많은 일들을 놓고 깊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 부부는 무한한 신뢰를 안고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문 총재가 겪은 노정과 내가 걸어온 길이 신비할 정도로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대단히 행복하고 모든 면에서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독생녀로 인침 받으시고 원래 온전한 모습으로 태어나셨으니 아무 노력도 할 필요 없이 오롯이 그 자리에 오르신 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주의 어머니로서 문 총재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삶을 즐기고 있지 않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생활의 단면만을 바라본 것입니다. 나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 힘들고 고된 험산준령을 넘었습니다. 다만 세상 그 어느 아내보다 더 큰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이를 극복하고 살아왔습니다.
14남매를 키우면서도 아이가 많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아기를 넷 낳을 때까지 청파동의 어두컴컴하고 옹색한 방에서 출산했습니다. 다섯째부터 가까스로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것처럼, 어느 누구 하나 배 아프지 않고 낳은 자식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대여섯 살이 되어 골목에 나가 뛰어놀기 시작할 때부터 세상 사람들의 눈총과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네 아버지가 문선명이지? 네 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인지 넌 아니?”
“통일교회 때문에 세상이 소란스러워.”
나라 안에서는 문선명의 아들딸이라 하여 비난받고, 나라 밖에서는 동양 사람이라고 차별대우를 받았습니다. 단지 문선명 한학자의 아들딸이라는 이유 하나로 고통을 겪어야 하는 아이들을 품에 안고 나는 한탄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사랑과 헌신으로 돌보았음에도 해야 할 교회 일과 뜻길이 너무 바빠 함께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문 총재가 세계순회를 떠난 어느 날, 세 살이 안 된 효진이가 방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상시에는 차나 자전거를 그리기 좋아했습니다. 그날 따라 흰 종이에 어설프게나마 얼굴 하나를 그렸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짐짓 물었습니다.
“효진아, 이 사람이 누구니?”
효진이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종이에 또 한 사람을 그렸습니다. 처음과 다른 얼굴이었지만 이번에도 영락없는 아버지였습니다. 평소 활달한 효진이는 그날 얌전히 앉아 그림만 그렸습니다. 하루 종일 아버지 그림 그리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에야 길고 긴 그림 그리기를 멈췄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아버지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으며 품에 안기던 그 애틋한 뒷모습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만일 내가 기쁜 일만을 누려 왔다면 다른 사람의 깊은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천국의 즐거움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지옥의 제일 밑바닥까지 통과하고 온갖 쓴맛을 다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나 스스로를 단련케 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신앙과 굳센 의지 그리고 인내였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냈습니다.
누구라도 천국 가는 길에서 달콤함이나 즐거움만 얻을 수는 없습니다. 신앙적인 고통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는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그 시험을 이겨 내야 참다운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인내의 쓰디쓴 열매가 알알이 맺혀 어느 날엔가 빛나는 자랑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