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잔디밭 위로 내리는 여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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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말씀은 참어머님 자서전 ‘인류의 눈물을 닦아주는 평화의 어머니’ 중 일부를 발췌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미국 팝가수 제임스 테일러가 부른 노래 중에 은 1974년 닉슨 대통령의 하야를 그린
곡입니다. 마지막 부분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Yeah, big Moon landing, people are standing up.”
여기서 ‘big Moon’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남편 문선명 총재를 가리킵니다.

양키 스타디움 대회가 열리기 5년 전인 1971년 우리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세계는 꼭 나침반을 잃어
버린 난파선 같았습니다. 공산주의의 위협이 갈수록 심해졌고, 기독교는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
니다. 청년들은 무너진 성도덕으로 인해 참된 삶의 목적과 목표를 잃고 방황했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들이 피땀으로 건국한 미국은 그 소명을 잊고 퇴폐문화로 얼룩졌습니다.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민심이 사분오열로 갈라져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도 정치인들은 닉
슨의 하야를 요구했습니다. 전 세계가 덩달아 설왕설래했는데, 나는 그 사건이 선량한 사람들에게 참
혹함을 안겨 줄 것을 잘 알기에 가슴이 무척 아팠습니다.

우리 부부는 미국 국민들을 향해 “용서하라, 사랑하라”고 외쳤습니다. 닉슨 대통령 한 사람에 대한 용
서가 아니라 미국인 모두의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였습니다. 나날이 밀려오는 공산세력의 적화 야욕
을 막아 내기 위한 외로운 외침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의 메마른 심령에 성령의 불을 붙여 하나님의 사상
을 각성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지 1년이 겨우 지난 1972년 겨울, 뉴욕에서 ‘하나님의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때 세계
의 현실을 식구들에게 알려 주고 우리가 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도 들려주었습니다.
“민주세계는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절박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 위기를 타개하려면 우리가 적극
나서야 합니다.”

우리 부부는 곧바로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청
년들을 모아 통일십자군(One World Crusade)을 만들어서 불같은 열정을 품고 세계를 일깨우라고
독려했습니다.

1974년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한 해였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꼭 만나기를 원한다”는 연락을
해와 우리는 백악관으로 갔습니다. 초조해하는 그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들려주고, 미국이 무엇
을 해야 할 것인지 준엄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어 32개 도시를 순회하며 강연을 했습니다. 처음에 미국인들은 당혹해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우리의
뜻을 이해하고 감동을 받아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우리의 순회 연설은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집회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미국에서 열린 통일교회의 첫
번째 대강연회이자 미국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록이었습니다. 3만여 명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음에도 2
만여 명이 입장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 돌아가야 할 만큼 대성황이었습니다.

우리는 대회의 주제를 ‘기독교의 새로운 장래’로 정했습니다. 뉴욕은 미국의 중심 도시이고 매디슨 스
퀘어는 뉴욕의 중심부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타오른 하나님을 향한 불길은 전 미국으로 퍼져 나갔으며
지구촌을 밝히는 횃불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 온 지 3년여 만에 매디슨 스퀘어 가든 집회를 통해
만민을 해방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렸습니다.

잠시 쉴 틈도 없이 미국과 전 세계를 감격케 하는 대회를 연이어 두 번이나 열었습니다. 건국 20주년에
맞춘 뉴욕 양키 스타디움 대회와 워싱턴 D.C. 모뉴먼트 대회였습니다. 6월 1일 양키 스타디움의 성공
에 힘입어 워싱턴에서 모뉴먼트 대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 정부와 종교계가 총공격
을 퍼부었고 언론들은 헐뜯고 비난하기 바빴습니다.

“백악관과 국무성에서 반대가 심합니다.”
“모든 신문이 우리를 헐뜯느라 지면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양키 스타디움 대회 때는 12개 단체가 공격을 퍼부었는데, 워싱턴 대회에는 30여 개가 넘는 반대파들
이 똘똘 뭉쳐 공격을 해왔습니다. 공산당까지 가담해 대회 자체를 무산시키려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
러나 우리는 한 치의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오로지 하나님의 승리를 위해 생명을 걸고 대회를 감행했
습니다.

대회 40일 전에야 천신만고 끝에 집회 허가가 났습니다. 그 40일은 심정적으로 40년보다 길고도 막막
한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늘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너무 골몰
한 나머지 아침을 저녁으로, 저녁을 아침으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드디어 1976년 9월 18일 워싱턴 모뉴먼트 광장에서 미국 건국 200주년 대강연회가 열렸습니다. 30여
만 명이 구름처럼 모여든 광경은 실로 기적적인 장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모뉴먼트 대회는 통일교회를 선전하거나 문선명과 한학자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열린 대회가 아니었습
니다. 오히려 내부적으로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심지어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는 소식도 들려왔지만
우리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깊은 기도를 올리고,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형장
에 나가는 것보다 더 무거운 마음으로 행사장으로 향했습니다. 전 인류를 감동시키게 해달라는 기도
를 하며 대회장에 들어섰습니다. 그 기도와 정성은 대회장에 모인 30여만 명을 넘어 전 미국인에게, 지
구촌 모든 사람에게 어둠을 밝혀 주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미국 언론과 온 국민이 통일교회에 반대했지만 우리는 그 반대를 극복하고 대회를 성공시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낯선 땅 미국으로 건너가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 세 차례의 대회를 성황리에 마쳐 하나님
이 소망하시는 성스러운 뜻을 이루었습니다. 1974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집회와 1976년 양키 스
타디움 대회 그리고 워싱턴 모뉴먼트 대회에서 참다운 승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의 영광은 우리 교회
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구촌 온 인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도착해서 짧은 기간에 그처럼 넓고 깊은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
다. 미국인들이 종교성을 회복해 가슴속에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는 호소가 큰 공감을 받았습니다. 가정의 소
중함을 일깨우고, 청년들이 도덕성을 되찾아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정성을 다한 것도 미국인
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동양에서 온 우리 부부에게 별반 호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통일원리’라는 처음 듣는 단어
를 낯설어했습니다. 그러나 곧 그 원리가 진리임을 깨닫고 차츰 우리 식구가 되었습니다. 엘리트층을 중심으
로 퍼져 나간 원리말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종과 직업, 나이, 학력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
어 그들 삶의 핵심 축이 되었습니다. 미국 전역을 다니며 학교를 세우고, 신문사를 만들고, 봉사단체를 조직
하고, 리틀엔젤스 공연을 했습니다. 그 길목마다 선교사들의 피와 땀,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
의 쉬지 않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2016년 여름에 열린 ‘뉴욕 양키스타디움 대회 40주년 기념식’은 그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날이었습니다.
나는 40년 전의 위대한 승리에 만족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푸른 잔디밭
위로 내리는 여름비를 맞으며 이제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고 평화의 참어머니로서 희망과 행복의 평화세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소명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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