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말씀은 참어머님 자서전 ‘인류의 눈물을 닦아주는 평화의 어머니’ 중 일부를 발췌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옥도끼로 찍어 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천년만년 살고 지고
한편으로는 애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울림과 깨우침을 주는 노래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겠다는 구절은 효의 도리를 다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잃고 천애고아로 살아가는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하여도 하나님과 본향을 찾아가야 합니다. 화려한 구중궁궐이 아닌 오막살이 초가삼간일지라도 그리운 부모를 모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삶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을 비롯해 만물은 태양을 좋아합니다. 태양이 있어야만 생명체가 탄생하고 만물이 번성합니다. 그런데 달은 느낌이 다릅니다. 태양이 화려함이라면 달은 고요함입니다. 집을 떠난 사람은 태양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하기보다는 달빛 아래에서 고향을 떠올리고 부모를 그리워합니다. 나는 남편과 달에 대한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추석이나 정월대보름에는 많은 식구와 함께 달맞이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달을 보며 마냥 상념에 젖어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일을 끝내고……”
남편은 늘 그렇게 말했습니다. 남편뿐만 아니라 나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이 일을 끝내고, 한가해지면 그때 조금 쉴 수 있겠지요.”
급한 이 일을 끝내고 나면 조금이라도 쉴 틈이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여유로운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100년 전 외할머니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 만세를 외쳤던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인류를구원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평생 젊음과 정열을 남김없이 불태웠습니다. 비폭력과 평화를 부르짖은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나는 늘 평화를 모든 일의 앞자리에 놓았습니다.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는 마음으로 살면서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일구월심(日久月深) 한마음과 한뜻으로 오직 ‘위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육신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휴식을 한 번도 누려 본 적이 없습니다. 밥을 먹거나 잠자는 일도 잊고 지낼 때가 많았지만, 몸이 아픈 것도 마치 사치인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남편 문선명 총재는 워낙 튼튼한 체질로 태어났기에, 건강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좀 더 많은 시간 일할 수 있었으련만, 하늘의 뜻 앞에서는 자신을 조금도 돌보지 않은 탓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건강을 해쳤습니다. 성화(聖和)하기 전 4~5년 동안은 마치 천년을 하루처럼 바쁘게 살았습니다.
특히 외국을 다닐 때 남북보다 동서를 횡단하는 것이 건강에는 더욱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나이를 생각하면 장거리 여행은 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굳이 해외에 나가야 한다면 2~3년에 한 번 정도 외유를 해야 했음에도 성화하기 1년 전 90세를 훌쩍 넘긴 연세에도 여덟 차례 넘게 미국을 왕래했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전혀 돌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 일했습니다.
교회 식구들은 물론 청년들에게 인내심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을 길러 주기 위해 거친 바다에서 며칠 동안 밤을 새우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훈독회(訓讀會)를 할 때면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너무 많아 열 시간을 넘기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다른 급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를 하여 급히 거문도와 여수를 다녀오다가 급기야는 감기가 들었습니다.
즉각 병원에 갔어야 했지만 “이 일을 끝내고 가자”며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마지못해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았을 때는 이미 건강이 무척 쇠약해진 상태였습니다. 2012년 여름 잠시 입원했지만 병원에서 검진을 끝내자마자 어서 퇴원하자고 막무가내였습니다. 조금 더 계셔야 한다고 만류했지만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병원에서 시간만 보내면 어떡하나!”
오히려 입원을 권유하는 사람들을 나무랐습니다. 어쩔 수 없이 퇴원을 했습니다. 그해 8월 12일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문득 말씀했습니다.
“내가 오늘은 엄마하고 겸상을 하고 싶다.”
그 말을 들은 우리 식구들은 참으로 의아했습니다. 항상 내가 옆에 앉아 함께 식사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늦은 아침상을 앞에 두고 남편은 숟가락을 들 생각은 하지 않고 내 얼굴만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아마 마음속에 아내 얼굴을 새기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남편 손에 숟가락을 쥐여 주고 반찬을 올렸습니다.
“이 나물이 맛있으니 천천히 드세요.”
8월 13일은 유독 태양 빛이 강했습니다. 문 총재는 한 키가 넘는 커다란 산소통을 대동하고 따가운 햇빛을 받으며 청평호수와 청심중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천원단지를 두루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정궁으로 돌아와 녹음기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녹음기를 손에 들고 10여 분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띄엄띄엄 말씀을 녹음했습니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모든 것을 하늘 앞에 돌려드리겠다. 완성. 완결. 완료하셨다.”
결국 이 기도는 참아버지의 마지막 기도였습니다. 이날 기도 내용은 당신이 지나온 한 생애를 종결짓는 자리에서 타락의 역사를 초월해 인류 본연의 에덴동산으로 돌아가고 부모님만 따라오면 천국으로 향할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종족을 인도하는 사명으로 나라를 복귀하겠다는 선포였습니다. 알파요 오메가이자 시작과 끝이 모두 함축된 기도이자 말씀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가쁜 숨을 몰아쉬고 내 손을 꼭 잡았습니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 잘 부탁해!”
힘겨워하면서도 “너무 미안하고 정말 고맙다”고 연이어 말했습니다. 나는 손을 더욱 굳게 잡으며 다정한 말과 눈빛으로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아무 걱정 하지 마세요.”
2012년 9월 3일. 문선명 총재는 93세를 일기로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고 천성산 기슭 본향원에 잠들었습니다. 나는 자주 천성산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옥도끼로 찍어 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천년만년 살고 지고……” 그 소망을 한없이 되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