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고대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웅장한 여정 뒤에 숨겨진,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한 오디세우스의 20년 수난기를 다룬다.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동료를 잃고, 마녀 키르케의 주술에 빠져 선원들이 돼지로 변하는 비극을 겪었다. 영혼을 흔드는 세이렌의 달콤한 유혹 앞에서는 자신의 몸을 돛대에 밧줄로 바짝 묶은 채 간신히 이성을 지켜내야 했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일으킨 매서운 폭풍우 속에서 배가 산산조각 나는 절망을 맛보았다. 그럼에도 그가 끝내 노 저어가고자 했던 곳은 사랑하는 가족과 평화가 기다리는 고향 이타카였다.

오늘날 통일가가 마주한 현실 역시 오디세우스가 지나온 아득한 바다와 닮아 있다. 목적지를 향해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신앙의 여정 속에서,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커다란 질문을 던지게 된다.
1954년 창립 이래 통일가는 참부모님의 가르침 아래 참사랑의 가정을 이루고, 국경과 인종을 넘어선 평화운동을 추진하며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그 길 뒤에는 오랜 세월 동안 하늘의 뜻을 세우고자 땀과 눈물을 바쳐온 수많은 식구들의 순수한 헌신이 깊이 서려 있다.
그러나 현재 식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고난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거센 파도와도 같은 현실적 시련 앞에서 식구들이 느낄 마음의 상처와 혼란은 실로 깊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걸어온 신앙의 길과 지향점을 다시금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엄중한 시간이다.

오디세우스가 마침내 고향 이타카에 도달했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궁전을 점령하고 아내를 유혹하며 재산을 탕진하던 108명의 구혼자들이었다. 이는 마치 인간의 영혼을 어지럽히는 ‘108번뇌’처럼, 참된 본향의 질서를 뒤흔드는 세속의 온갖 탐욕과 유혹의 형상화였다. 오디세우스가 마음의 중심을 잡고 활시위를 당겨 궁전의 질서를 회복했듯, 신앙의 여정 역시 번잡한 마음의 소음을 조용히 잠재우는 성찰과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 마주한 시련은 눈앞의 세속적 여건이나 외형적인 조건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식구들 각자가 신앙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나 환경을 넘어, 당초 지향했던 참사랑의 가치와 하늘부모님을 향한 순수한 초심으로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세이렌의 유혹과 108 구혼자들의 난동 속에서도 끝내 돛대를 잡고 활을 당겼던 오디세우스처럼, 우리 역시 진리의 중심에 스스로를 가다듬어야 할 때다.

오디세우스가 마침내 온갖 난관을 헤치고 고향 이타카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시련 속에서도 본향을 향한 지향점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식구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급한 절망이나 눈앞의 풍랑에 흔들리는 것이 아닌, 현상을 직시하는 성숙한 자세다. 시련의 밤을 지나는 동안 식구들 개개인이 쌓아온 헌신과 참사랑의 순수함은 결코 빛을 잃지 않는다.
인간이나 세속의 권력이 아닌 진리 그 자체를 바라볼 때, 우리는 거친 파도를 지나 비로소 영혼의 참된 고향, 진정한 ‘이타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