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P 매거진은 박노희 원로 식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과 그 안에 담긴 참부모님의 비전과 뜻을 독자 여러분께 전하고자 한다.
형님을 따라나선 신앙의 길
제가 처음 교회를 찾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형님이신 박보희 회장께서 “같이 예배에 가보자”며 권유하셨고, 아버지와도 같았던 형님의 말씀이었기에 저는 자연스럽게 그 뜻을 따르게 됐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청파동 원본부교회였습니다.
그날 참아버님께서 직접 주재하신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경험이 제 신앙의 출발점이자 통일교회와의 첫 만남으로 남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부모님의 말씀을 처음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아 뜻길을 결심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제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
학생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교회와의 인연이 이어졌고, 그 흐름 속에서 신앙 역시 차분히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이후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해군에서 4년간 복무했습니다.
제대를 앞두고, 공대를 졸업한 제가 참부모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이라면 통일산업에서 일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큰 망설임 없이 ‘참부모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따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보따리를 싸 들고 구리 수택리로 들어가면서, 제 공직 생활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한류 문화의 원조, 리틀엔젤스
참부모님께서는 1962년, 리틀엔젤스 어린이예술단을 창설하셨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한국은 전쟁과 고아, 가난이라는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긴 분이 바로 제 형님이신 박보희 회장이었습니다. 형님은 당시 육군 소령으로 미 대사관에서 근무하며,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참부모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조국, 대한민국을 세계에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그 고민은 곧 “한국의 아름다움과 밝은 미래를 예술을 통해 세계에 전하자”는 분명한 비전으로 구체화됐고, 그 결심이 바로 리틀엔젤스의 창설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1969년, 부름을 받아 리틀엔젤스의 국내 훈련과 교육을 맡게 됐습니다. 이후에는 세계 공연을 인솔하는 책임까지 맡으며, 리틀엔젤스의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귀한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리틀엔젤스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첫 해외 공연이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초청 특별 무대였다는 사실은 지금도 깊은 감회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를 시작으로 백악관 초청 공연, 영국 왕실 어전(御前) 공연, 유엔 총회 본회의장 공연에 이르기까지 리틀엔젤스는 세계 무대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넓혀 갔습니다. 이 모든 성과의 뒤에는 참부모님의 변함없는 격려와 꾸준한 지원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기반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리틀엔젤스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리틀엔젤스는 시대가 요구하던 문화적 사명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던 단체였습니다. 오늘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한류 문화의 출발점은 이미 그때부터 마련돼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문화가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넓혀 가는 모습을 보며, 참부모님의 비전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 있었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리틀엔젤스와 그 안에 담긴 참부모님의 뜻이 분명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애천(愛天)·애인(愛人)·애국(愛國)
리틀엔젤스 공연을 위해 학생들이 해외 무대를 오가다 보니, 잦은 이동으로 학교 수업에 차질이 생기는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며, 아이들이 예술 활동과 학업을 함께 이어갈 수 있는 안정적인 교육 환경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게 됐습니다.
비엔나 소년합창단처럼 자체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사례를 접하며, 우리에게도 반드시 그런 교육 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학교 설립 구상을 시작했고, 그 뜻을 아신 참부모님께서는 학교 건립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리틀엔젤스예술학교가 세워졌고, 1974년 마침내 개교하게 됐습니다. 당시 참부모님께서 직접 학교를 방문해 휘호를 써주신 장면은 지금도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학교의 문을 여는 자리에서 참부모님께서는 교육에 담고자 하신 비전을 분명히 밝혀주셨습니다. 리틀엔젤스예술학교의 건학 정신으로 주신 말씀이 바로 ‘애천(愛天)·애인(愛人)·애국(愛國)’이었습니다.
이 건학 이념은 참부모님의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정신이라 생각합니다.
참부모님께서 평생 강조해 오신 교육의 뜻 또한 이 ‘애천·애인·애국’ 정신에서 출발했다고 믿습니다. 하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나라를 위해 봉사하라는 참사랑의 가르침이 우리 교육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리틀엔젤스예술학교의 건학 정신은 이후 선문대학교까지 이어지며 일관된 교육 체계를 완성하는 토대가 됐습니다. 무(無)에서 출발한 리틀엔젤스 프로젝트가 오늘날 세계 속에 빛나는 교육의 터전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그저 감격스럽기만 합니다.
저는 참부모님의 비전을 존경하며, 그 여정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에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세대를 넘어 이어가는 뜻길
세월이 흘러 이제는 원로의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 현장에서 뛰며 느꼈던 감동과 열정은 지금도 제 안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참부모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제 인생에서는 큰 축복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감사한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요즘에는 참어머님께서 길러주신 퓨어워터들이 찬양하고 각지에서 교회 사역에 힘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들의 밝은 기상과 새로운 세대의 에너지를 볼 때마다 마음속에서 희망이 솟아오릅니다. 또한 천애축승자이신 문신출·문신흥 선교사께서 앞장서 공동체를 격려하고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두 분을 중심으로 나아간다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는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많은 원로 식구들이 함께 느끼는 공통된 마음일 것입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참부모님을 모시고 걸어온 이 뜻길이 세대를 넘어 온전히 전승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지켜온 신앙과 전통이 다음 세대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들의 손을 통해 더욱 아름답게 완성되어 가기를 기대합니다. 그 길을 묵묵히 응원하며, 미래세대를 향한 변함없는 격려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