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며느리의 효행 이야기 —시할머니와 시부모를 모실 수 있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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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과 인종, 언어와 문화를 넘어 ‘인류 한 가족’을 이루어가고자 하는 뜻 아래, 한국인과 일본인이 가정을 이루어 사랑과 인내로 함께 살아온 다문화 축복가정의 삶을 소개한다.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일본인 며느리들은 가족을 돌보고 자녀를 키우며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효와 봉사의 삶을 실천해 왔다. 그들의 삶에 담긴 사랑과 헌신, 가족을 향한 효행을 담은 「인류 한 가족의 꿈, 다문화 축복가정 일본 며느리의 효행 이야기」에서 일부 발췌·정리했다. <편집자 주>

세키 아스카

2005년 4억가정 축복 한·일가정, 강원 춘천

일본인인 제가 시댁에 들어갔을 때, 90세에 가까운 시할머니와 시부모님, 3형제 중 막내인 남편 그리고 뒷방에 세 들어 사는 다른 가족이 있었습니다. 한국말이 서툴러 처음에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한국의 문화와 속깊은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이후 딸이 태어나면서 저희 집은 ‘4대가 사는 집’이 되었습니다.

시부모님은 농사와 시장 장사를 하며 늘 바쁘셨지만, 자식들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결혼 후 바로 첫째와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던 저는 어머님께 충분히 효도하지 못해 마음에 큰 응어리가 맺혔습니다.

어머님이 암 투병하실 때 요양원에 가시게 된 시할머님을 다시 집으로 모셨습니다. 당시 딸은 4살, 아들이 돌이 될 무렵이었으니 집안이 매우 분주했습니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혼자 화장실에 가지 못하였지만, 다른 지병이 없어 모시기가 수월했습니다. 낮에는 제가, 밤에는 아버님이 돌봐주셨습니다. 치매 없이 진지도 잘 드셔서 편안히 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사실 혼자 남은 시아버님과의 관계가 저에게는 큰 숙제였습니다. 친정아버지와의 마음의 문제로 아버지 나이대의 남성에게 극복하기 힘든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아버님께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기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남편도 아버님과 성격이 맞지 않아 자주 부딪히며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잘 모셔야 하는데’라는 마음에 괴로웠습니다. 그러던중 한학자 참어머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백 순금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기도를 계속 드렸습니다.

몸이 불편한 시아버지를 정성껏 돌보는 며느리
자료 제공_천원사


매일 기도하며 아버지께 더 잘해드리고자 노력했고, 아버님도 저에게 의지하게 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아버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습니다. 좌반신 마비로 왼쪽 손발을 못 쓰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못해 드린 건 돌이킬 수 없어도, 이제부터라도 행복하게 해드리자. 평생 일만 해오셨으니 편히 쉬시게 해드리자’ 결심하였습니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기저귀를 채워드려도 마음에 갈등이 없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이번 일을 통해 아버님과 남편 사이도 가까워졌습니다. 남편은 아버님을 위해 집을 개조하고, 손잡이를 단단히 달아 휠체어가 들어가게 했습니다. 서로가 마음을 열고 너그러워졌습니다. 이후 아버님은 재활운동에 힘써 혼자 화장실에도 가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아무 근심도 두려움도 없고 너무 행복합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은 있지만, 어떠한 골짜기든 오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소중한 가족들과 이 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신앙 수기 모집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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