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과 인종, 언어와 문화를 넘어 ‘인류 한 가족’을 이루어가고자 하는 뜻 아래, 한국인과 일본인이 가정을 이루어 사랑과 인내로 함께 살아온 다문화 축복가정의 삶을 소개한다.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일본인 며느리들은 가족을 돌보고 자녀를 키우며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효와 봉사의 삶을 실천해 왔다. 그들의 삶에 담긴 사랑과 헌신, 가족을 향한 효행을 담은 「인류 한 가족의 꿈, 다문화 축복가정 일본 며느리의 효행 이야기」에서 일부 발췌·정리했다. <편집자 주>
아오야나기 히토미
1995년 36만가정 축복 한일가정, 충북 진천
진천군수상, 효부상
어느 날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간병한 공로로 면장님의 추천을 받아 어버이날 진천군 공관에서 군수님으로부터 효부상을 받았습니다.
시어머니는 항상 저를 고맙고 대견하게 여기셨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지셨을 때 저는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꿈에서 시아버지가 나타나 따뜻한 황토방에서 쉬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시아버지가 시어머니를 부르고 계신다고 느꼈고, 곧 이별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달 후, 제가 공장에서 일할 때 시어머니는 손자들 이름을 부르신 뒤 돌아가셨습니다.
평소 딸들보다 낫다고 하실 때 매우 기뻤고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잘살게 많이 도와줄게”라고 말씀하셨는데,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 만에 집안 형편이 좋아졌습니다. 남편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시어머니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어머니가 파김치와 열무김치 등 반찬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지금은 그때 배운 것을 잊지 않고 가족에게 만들어 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명절에 시댁 식구 15명을 위해 혼자 음식을 준비할 때도 있었고, 힘들 때는 남편이 도와주었습니다.
큰딸이 4살, 아들이 2살 때부터 회사에 다녔습니다. 잔업 후 8시에 집에 오면 남편이 저녁을 준비해 주어 집안일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한국에서 일할 생각을 못 했지만, 아이들과 시어머니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한국 사람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일본 국적이지만 한국을 일본만큼 좋아합니다. 힘들고 지친 순간도 있었지만, 수십 년간 지내며 한국인들의 재미있는 면과 일본인과 다른 특별한 점들을 발견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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