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난길 끝에 찾은 신앙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저희 가족은 북에서 남으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온전히 내려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피난 도중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이후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피난민 수용소에서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야 저희 가족은 겨우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제 모친이신 최정순 선생(이하 어머니)께서는 그때부터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하시며 신앙을 간절히 붙들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따라 저희들도 자연히 교회와 신앙을 찾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원주여고에서 교직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셨습니다. 3학년 학생들을 이화여대 시험장에 인솔하는 자리에서 뜻밖의 만남이 이어졌습니다. 이화전문학교를 다니던 시절, 동기였던 최원복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최원복 선생님으로부터 통일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때부터 저희 가정은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955년, 제가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하던 해에 어머니를 따라 처음으로 참아버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어떻게 이렇게 우리 아버지와 닮았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전쟁 통에 잡혀가신 뒤 소식을 알 수 없어 늘 그리워하며 지냈는데, 참아버님을 뵈니 마치 제 육신의 아버지가 눈앞에 서 계신 듯한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그때는 문씨 성을 가진 분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씨 성을 가졌다 하면 서로를 일가처럼 여기며 가까이 지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참아버님을 처음 뵙는 순간, 더욱 자연스럽게 ‘아버지 같다’는 마음이 깊이 밀려왔고, 그 사실이 제게는 큰 기쁨이자 감사로 다가왔습니다.
시련 속에서도 흔들림 없던 희망
통일교회가 부흥을 시작하던 시기, 사회적으로 ‘이단’이라는 낙인이 찍히며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특히 연세대·이화여대 퇴학 사건이 발생하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고, 그 영향은 저희 가족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당시 학교는 교직에 있던 어머니에게 신앙을 택할 것인지, 학교를 택할 것인지 양자택일을 요구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어떻게 찾은 생명의 길인데 이 길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피난길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고, 고된 세월 속에서 오로지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오신 분이었기에 그 신앙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희 형제들도 어머니의 뜻을 온전히 따르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고아원에 가도 좋습니다. 어머니를 응원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리며 어머니의 선택을 지지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학교를 떠나셨고, 저희 가족은 다시 피난민과 같은 생활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전도된 학생들까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함께 교회를 세우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1956년, 원주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그 후 참부모님께서는 여러 차례 원주교회를 방문하시며 저희에게 많은 가르침을 전해 주셨습니다. 특히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아 온 나라가 고아와 과부, 가난으로 가득했던 그 시대에 참부모님께서 “이제 한국은 평화의 새 예루살렘이 된다”고 말씀하셨던 순간입니다. 당시 현실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희망이 되었고, 참부모님의 비전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지난 70여 년의 여정을 지탱해 준 힘이 되었습니다.


여성들이 앞장선 새 시대의 평화
1992년, 참부모님께서는 앞으로의 시대는 여성이 앞장서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여성이 앞장서서 참사랑으로 길을 열어야 한다”는 참부모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저는 여성운동과 평화운동의 길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 길 위에는 말로 다 담기 어려운 감격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한·일 여성 자매결연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한을 품어온 두 나라의 여성들이 1년 동안 38차에 걸쳐 모였고, 16만 쌍이 자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두 나라의 여성들이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며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구나” 하며 깊은 감격을 느꼈습니다.
이후 참부모님께서는 중동의 갈등과 분쟁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풀어야 한다고 하시며 사명을 주셨습니다. 당시 중동은 자살 테러가 연이어 발생하던 매우 위험한 시기였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내가 너희 누이들을 그런 곳에 보내는데 그냥 보낼 수 없다. 너도 함께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당부하셨고, 온종일 함께 정성을 들이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한 정성의 터전 위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평화대행진을 이루었고, 오랜 세월 갈등하던 이슬람 여성들과 유대인 여성들이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화해하는 장면을 마주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미래 세대에게
지금은 남북 관계도 다시 복잡해지고, 중동 정세 또한 흔들리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저는 우리 젊은 세대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참부모님의 뜻을 받들고, 선배 세대가 눈물과 정성으로 닦아 놓은 기초 위에서 열매를 맺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2세·3세, 미래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은 생애 동안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며, 하늘이 바라시는 길을 함께 응원하고자 합니다.
문신출·문신흥 선교사가 구리대교회를 찾아 찬양 예배를 이끌어 주셨는데, 그 모습을 보니 자연스레 효진님이 떠올랐습니다. 두 분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참부모님의 세계적 섭리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로 성장한 모습을 보며 깊은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문득 돌아보니 제가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올해로 70주년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지금 시기는 우리의 70년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의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정성과 사랑으로 마음을 모은다면 하늘이 바라시는 방향으로 더 크게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흐름을 잘 이어간다면 하늘이 기대하시는 더 큰 축복이 반드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신학 공부를 하며 인류 구원섭리를 돌아보니, 새로운 길은 언제나 어려움 속에서 열려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고난 가운데서 섭리하시는 하늘부모님”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곤 했습니다.
오늘날 미래세대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지난 70년의 역사가 앞으로 더 빛나고, 하늘이 사랑하시는 승리의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이 제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과 감사의 마음으로 저는 계속 이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