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주평화의 왕 참부모님 천정궁 입궁·대관식 제20주년 기념식이 난 7월 29일, 참가정과 임직원이 함께한 가운데 거행됐다. 이번 기념식은 하늘 섭리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참부모님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또한 오랜 기간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해 온 장기근속자들을 격려하는 시상식도 함께 진행됐다. TP매거진에서는 천정궁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 장기근속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번 호에서는 참부모님의 생애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보존하고 전시를 담당해 온 박인경 중앙행정원 전시수장국장을 만났다. 20여 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그가 말하는 ‘모심’의 의미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하늘과 맺은 약속으로 시작된 길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중앙행정원 전시수장국장을 맡고 있는 박인경입니다.주로 하는 일은 참부모님 생애 전반의 자료와 천정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행사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천정궁 안에서 전시를 구상하고 운영하는 일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가족 이야기도 간단히 소개해 주신다면요.
A. 1992년 2세 200가정으로 축복을 받았고, 두 딸을 두고 있습니다. 큰아이는 축복을 받아 손주도 벌써 둘입니다. 둘째는 대학 졸업반으로, 짝을 찾아가는 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430가정으로 축복을 받으셔서 두 분 모두 평생 참부모님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 과업을 이어받아 제가 천정궁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 천정궁에 오셨을 때, 이렇게 오랫동안 근무하게 될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A.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곳에서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각오는 하고 왔습니다. 사실 처음 이곳에 오게 된 동기는 제가 천정궁에서 일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면 초등학교 2학년 때 참아버님께서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라고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 부모님은 참부모님을 모셨으니 저는 효진님을 모시겠습니다”라고 답을 드렸는데, 그것이 하늘과의 약속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살아온 과정 가운데 하늘이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시고, 이 자리로 불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이곳에 있으리라는 예상보다는, 하늘과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일해 왔습니다.



❸천지인 참부모님 천주성화식 모습(2012.09.15)
첫 출근날 혹은 입사 초기의 천정궁 풍경을 기억하시나요?
A. 제가 이곳에 근무하게 된 것은 공식적으로 2004년이니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입니다. 천정궁이 한창 공사를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기초 공사를 마무리해 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공사판이었습니다. 진흙밭이었고, 입궁 대관식을 하는 그 순간까지 매일같이 현장을 돌아보며 점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첫날의 아름다운 천정궁보다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공사 현장의 천정궁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많은 날들을 천정궁에서 지내셨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를 꼽는다면 언제일까요?
A. 아무래도 참아버님의 천주성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 날입니다. 천정궁은 처음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천주성화까지 동시에 준비했다고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이 닥쳤을 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일들을 미리 예상하고 준비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천정궁은 처음부터 일이 진행됐습니다. 그 과정에서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참부모님의 성화와 관련된 부분이었기에, 어떻게 하면 부족함 없이 모셔드릴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런 과정 가운데 참아버님의 천주성화를 맞이했기 때문에, 그날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날이지만 개인적으로도 매우 중한 날입니다. 참아버님을 직접 천주성화로 모셔드리기 위해 장례관리사 자격증까지 준비했습니다. 여러 기관이 있지만 최고의 기준으로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곳 중에서도 대학이 직접 과정을 운영하는 곳을 골랐습니다. 그중 한 곳은 부산, 한 곳은 원주에 있었는데 부산은 너무 멀어 원주에서 1년 동안 공부하며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준비한 과정 가운데 부족하나마 참아버님을 모실 수 있었기에, 그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 날입니다.
마지막 당부를 붙들고 걸어온 시간
근무하시며 힘드셨던 시간도 있었을 텐데, ‘다른 일을 해볼까’ 생각하신 적은 없으신지요.
A.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다른 일을 해볼까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천정궁에서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있었던 동기 중 하나가 2012년, 참아버님께서 성화하시기 한두 달 전의 일입니다. 훈독회를 마치시고 천정궁 3층 훈독실 복도에서 참아버님을 뵈었는데, 저를 붙드시고 30분 정도 그 자리에 서서 여러 말씀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100년 뒤, 1천 년 뒤 후손들은 참부모를 보려야 볼 수가 없고 느끼려야 느낄 수가 없는데, 그때의 참부모를 후손들이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박물관밖에 없다. 그러니 네가 박물관을 책임 맡고 있으니 그 사명을 다해야 된다”라며 “앞으로 참어머님 혼자 계실 때 부족함 없이 잘 모셔드려라”라는 당부도 함께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아버님께서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저에게 주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붙들고 지금껏 힘든 과정을 견뎌올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하길 정말 잘했다”라고 느끼셨던 보람된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A. 매 순간이 보람되고 감사하면서도 힘든 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참아버님께서 하늘로 가시는 마지막 13일을 곁에서 지켜드릴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보람된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그동안 진행했던 여러 전시 가운데, 참아버님 성화를
기념하는 휘호전을 열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참어머님과 참자녀님들을 모시고 전체 전시를 설명드렸는데, 휘호 하나하나에 담긴 참아버님의 뜻과 의미를 말씀드릴 때 참어머님께서 매우 진지하게 들어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그런 내용들을 너만 알고 있지 말고 많은 식구들에게 잘 전파해라”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순간 ‘아, 이제 내가 참부모님께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일들에 대한 칭찬처럼 느껴져 무척 감사했고, 지금 떠오르는 보람된 순간 중 하나입니다.
천정궁, 그리고 가족과의 약속
국장님께 천정궁은 어떤 의미일까요?
A.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천정궁은 저에게 약속입니다. 하늘과 했던 약속이 이어졌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참아버님께서 2012년에 주셨던 당부의 말씀을 지키기 위한 저 나름의 약속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이 자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속된 표현일 수 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잘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그 이면에는 하늘과 했던 약속을 깨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늘에 효심의 도리를 다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천정궁은 저에게 약속과 같은 곳입니다.
그동안 이 길을 함께 견뎌준 가족에게 한마디 남기신다면요.
A. 사실 미안한 마음이 더 큽니다. 가족들이 희생하고 참아주었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예전에는 천정궁에 비상이 걸릴 때가 무척 많았습니다. 새벽에도 항상 휴대전화를 귀 옆에 두고 자야 했고, 새벽 3시에 참아버님께서 “휘호 준비하라”고 하시면 부리나케 나와 준비해야 했습니다. 휴가를 가려고 가방까지 다 싸놓고 눈만 뜨면 출발하면 되는 순간에, 그 가방을 들고 그대로 천정궁으로 와서 일주일 동안 숙식하며 지낸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 철없는 아이는 방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혼자만의 모심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함께한 모심의 생활이었습니다. 무척 미안하고 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계속 이어질 텐데, 잘 참고 협조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참부모님께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참부모님께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항상 부족한 것을 아시면서도 곁에 둬주시고, 믿어주시고, 이 자리에 지금껏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만으로도 제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말은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가 전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훗날 세월이 많이 흘러 영계에서 다시 참부모님을 뵙게 된다면, 그때도 천정궁에서 모셨던 것처럼 영계에서 모실 수 있는 조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전까지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