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나를 곧 찾아오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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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말씀은 참어머님 자서전 ‘인류의 눈물을 닦아주는 평화의 어머니’ 중 일부를 발췌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조원모 외할머니는 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무렵부터 변함없이 한 가지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시다.”
심지어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엄마는 유모와 같다. 너를 하나님의 딸로 키울 뿐이다.”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복중신앙이었던 터라 그 말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며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포근하고 한없이 넓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키우면서 세속적인 삶에 물들지 않고 하늘의 뜻을 실현시키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뼈가 녹아나는 것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일편단심 하나님 앞에 절대복종하고 절대순종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딸이 세상의 유혹을 접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라도록 철저히 보호했습니다. 그 정성에 부응하듯 나는 고고한 학처럼 성장해 갔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중학생 시기에도 조용히 독서를 하고 공부에만 마음을 쏟았습니다. 나는 종로 사작동에 있는 성정(聖貞)여자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인왕산 남쪽 기슭 햇빛 고른 사직동에 자리한 아담한 학교였습니다.

성정여중은 1950년 5월에 개교했지만 불과 한 달 만에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휴교를 해야 했습니다. 개교하자마자 민족의 수난을 함께 겪은 것입니다. 전란 후 다시 문을 열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 인재를 길러 내야 한다는 사명으로 많은 여성을 교육했습니다. 1981년 은평구로 이전한 뒤 1984년에 ‘선정(善正)여자중학교’로 이름을 바꿨고, 현재는 선정중학교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 학교를 1987년에 인수해 통일그룹 내 선학학원의 한 가족이 되도록 했습니다. 늘 깊은 관심을 갖고 많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중학교에 다닐 때도 말수가 적고 아주 침착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 성적은 늘 상위권에 들었습니다. 예쁘고 조신한 용모에 얌전하고 정숙해서 항상 선생님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나의 학교생활은 별다른 굴곡 없이 오히려 평탄했습니다. 몸이 심하게 아파 1학년 때 한두 번 결석을 한 정도였습니다. 그러고는 2~3학년 연이어 학급 최고 성적으로 우등상을 받았습니다. 밖에서 하는 활동이나 운동보다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즐겼습니다. 또 하나의 취미는 그림 그리기였습니다.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 때도 미술에 취미와 소질이 있었지만 그림만 그리는 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중학교 3년 내내 학급대의원을 지냈고, 3학년 때는 운영위원장으로 학생 자치활동에 앞장서면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리더십을 한껏 발휘했습니다.

하루는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단상에 올라 학생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발표했습니다. 차분하면서도 당당한 나의 태도를 보고 선생님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습니다.

“학자가 정말 대단하구나!”
“조용하고 얌전한 줄로만 알았는데, 통솔력이 뛰어나네!”

선생님들은 미처 몰랐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따뜻한 관심을 기울여 주었습니다.

사춘기가 찾아왔을 때도 삶에 관해 고민하거나 방황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하늘을 모시고 사는 신앙을 심어 주신 덕분이었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엄격하게 신앙생활을 이끌었습니다. 그대는 너무 힘들다거나 고달프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몇 년이 흐른 후 그것이 언젠가 하늘의 독생녀로서 하늘의 독생자를 만나기 위한 준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외적인 신앙 환경과 함께 내적으로는 나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굳건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나는 많은 독서를 했습니다.<<성자성녀전(聖者聖女傳)>>을 즐겨 읽었고, 문학작품도 많이 읽었습니다. 특히 펄 벅의 <<대지>>를 좋아했습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자연과 운명에 맞서 삶을 개척해 나가지만, 인간은 결국 대지로 대변되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자연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품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내가 고향을 사랑하는 노래를 많이 듣고 고향에 관한 소설을 많이 읽게 된 것도 결국에는 하나님과 함께하고 싶은 간절한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나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알았기에, 내가 읽는 모든 작품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속의 거친 환경으로부터 나 자신을 완전히 격리하고 마치 수녀처럼 정결하게 생활했습니다. 나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늘이 인도하는 삶만을 살았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와 인간의 타락 역사, 그리고 중심인물들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읽으며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자녀로 사랑하시기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인간으로 인해 고통받고 슬퍼하시면서도 다시 당신의 자녀로 품으시는 하나님의 한 많은 역사를 읽으며,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레 문 총재가 내게 말했던 ‘희생’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

이 물음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에는 전쟁이 끝난 뒤라서 거리마다 부상자가 넘쳐났습니다. 전쟁고아를 비롯해 수많은 아이들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병에 걸려도 제때 치료받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밝은 세상으로 인도하기 위해 중학교를 졸업한 1959년 봄에 성요셉간호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959년 3월, 참어머님(두 번째 줄 가운데)께서는 가톨릭대학교 간호학과 전신인 ‘성요셉간호학교’에 입학하셨다. 이듬해인 1960년 음력 3월 16일, 참아버님과 성혼하시어 하늘부모님 해방과 인류구원, 평화세계 창건을 위한 참부모 노정을 일평생 걸으셨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는 삶은 희생과 봉사를 전제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혹독하게 신앙을 키워 오면서 가슴속에 간직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역사를 점철해 나오신 하나님을 해원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의 쇠사슬에서 자유롭게 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자리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자신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자리에 찾아오십니다. 내가 더욱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과 한을 되새길 때 그 하나님이 곧 나를 찾아오시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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