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과 인종, 언어와 문화를 넘어 ‘인류 한 가족’을 이루어가고자 하는 뜻 아래, 한국인과 일본인이 가정을 이루어 사랑과 인내로 함께 살아온 다문화 축복가정의 삶을 소개한다.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일본인 며느리들은 가족을 돌보고 자녀를 키우며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효와 봉사의 삶을 실천해 왔다. 그들의 삶에 담긴 사랑과 헌신, 가족을 향한 효행을 담은 「인류 한 가족의 꿈, 다문화 축복가정 일본 며느리의 효행 이야기」에서 일부 발췌·정리했다. <편집자 주>
오노 사나에
1992년 3만가정 축복 한·일가정, 경기 화성
국회의원상, 화성시의회 의장상, 화성시장상
일본에서 간호대에 입학해 3학년 때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후 한국에 와서 1남 4녀를 두고 시부모님과 3대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시집와서 다섯 자녀를 키우느라 정신없이 지냈고, 식사는 물론 화장실도 맘대로 가지 못하는 나날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부엌에서 종종거렸고, 농사일도 서툴러 막내를 업고 밭을 오가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답답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옛날에 바다가 있어 조개를 많이 먹었습니다. 동네 여자들이 모여 조갯살을 까는 작업을 자주 했었습니다. 조개는 칼이나 수저로 쉽게 까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조개를 보는 것조차 반갑지 않았지만 연습을 계속했습니다. 지금은 조개를 까며 대화를 나누고, 언제 그랬느냐는 것처럼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저도 참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더욱 감사한 사람은 남편입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항상 수고한다며 격려해 주고, 옆에서 뭐든지 도우려는 모습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런 남편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하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남편과 싸우거나 말다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동네에서 지도자와 이장을 맡게 되면서 저도 자연스레 사모가 되었습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7년째 이장 사모로 일하며 동네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이 대동맥파열로 12시간 동안 대수술을 받았고, 수술 후 반신 마비로 재활치료를 시작했습니다. 20킬로그램이나 빠진 남편의 모습을 볼 때마다 하늘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이웃들의 위로와 응원 덕분에 점차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랑하는 남편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하늘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이제 저도 한국생활이 25년 이상 접어들었습니다. 집에만 있던 제가 시어머니를 따라 봉사활동을 시작하고, 학교와 읍사무소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기분입니다. 시의원이나 봉사단체장과 연결되어 활동하다 보면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일본에서만 살았다면 평생 몰랐을 텐데, 한국과 일본을 사랑하며 참고 인내한 세월이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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