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알레한드로 데 소우자(Alejandro de Souza)의 회고록 중 일부에 실린 신앙 수기입니다. 그는 오랜 세월 참부모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통역과 보좌 업무를 맡아 수행한 인물로, 남미 순회를 비롯한 여러 섭리 현장에 동행했습니다. 이 글에는 1996년 초, 참부모님께서 중남미 순회를 앞두고 계시던 어느 날, 뇌우 속에서 겪은 아찔한 비행 경험과 그 가운데 목격한 참부모님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본문은 원문의 뜻을 살리되 읽기 쉽도록 문장을 다듬어 정리한 것입니다.<편집자 주>
1996년 초, 저는 참부모님을 모시고 경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브라질 마토그로소두술 주 자르딩에서 이륙해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버님께서는 아주 중대한 말씀을 하실 예정이었습니다. 성경의 여러 신비 가운데 예수님의 생부가 누구인지를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히시는 자리였습니다. 그 말씀은 이후 순회를 통해 중남미 20여 개국에 전해졌습니다.
경비행기의 좌석은 다섯 개였습니다. 두 자리는 조종사와 부조종사의 몫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숙련된 조종사였고, 그중 나이 지긋한 한 분은 오랫동안 우루과이신용은행에서 일한 베테랑이었습니다. 남은 세 자리에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제가 앉았습니다.

여행의 전반부는 더없이 즐거웠습니다. 아버님께서는 특유의 호기심으로 조종사들에게 비행기의 성능이며 계기판의 손잡이에 대해 쉴 새 없이 물으셨습니다. 그러다 제 손금을 봐 주시며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손을 보니, 네가 마음먹은 일은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겠구나. 내가 왜 너를 빅토리아 플라자 호텔 부사장으로 임명했는지 아느냐? 사람들을 만나고, 모임에 나가서 친구를 많이 사귀라는 뜻이다. 나는 목사이니 그런 생활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너는 할 수 있다.”

이과수 폭포 근처를 지날 무렵, 조종사들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예보도 없이 뇌우 전선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구름이 완벽한 폭풍을 이루며 몰려왔습니다. 어둡다는 말로는 부족했습니다. 그것은 아예 새까맸고, 지평선 전체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종사가 어서 고도를 낮춰 도로든 들판이든 어디라도 착륙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곧 밤이 올 것이었습니다. 카라스코 공항에서는 한국과 우루과이의 지도자들이 우리를 기다리며 걱정하고 있을 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들에게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직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이 왔습니다. 폭풍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비행기가 위아래로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난기류를 만날 때마다 기체는 몇 미터씩 뚝 떨어졌고, 그 충격이 위장과 머리로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동시에 기체는 좌우로도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 연약한 동체가 자연의 힘 앞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마치 미쳐버린 믹서기 안에 들어앉은 것 같았습니다. 두 분께서 받으시는 충격이 제가 받는 충격보다 더 아팠습니다. 순간 두 분의 머리가 천장에 부딪혔다가,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창문에 세게 부딪히고 다시 천장으로 튕겨 올라갔습니다. 수하물칸 문이 열리며 가방과 짐이 우리 쪽으로 쏟아졌습니다. 저는 제 몸이 어떻게 되는지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두 분이 겪으시는 매 순간의 충격만이 저를 아프게 했습니다. 그 연세에 이런 일을 겪으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때 아버님은 이미 일흔여섯이셨습니다.
이 비행이 어떻게 끝날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한 가지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일 리는 없다는 확신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이런 조상적, 문화적, 유전적 배경을 지니고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실 분들이 태어나시기를 이천 년이나 기다리셨습니다. 그 섭리가 이 작은 경비행기 안에서, 뇌우 한가운데서 끝날 수는 없었습니다.
고통은 영원처럼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그것을 뚫고 지나간 것이었습니다. 이따금 고개를 돌려 보면 조종사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했습니다. 기체가 안정되자 그들은 비로소 미소를 지었습니다. 한 사람이 뒤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뒤쪽을 보세요, 조금 위쪽을요. 우리가 어디서 빠져나왔는지 보이시죠.”
그 폭풍의 눈이 지녔던 빛깔과 소용돌이를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저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착륙할 곳을 찾았습니다. 리베라였는지 아르티가스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미 우루과이 땅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작고 을씨년스러운 공항이었고, 그 시간에 근무 중이던 담당자 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님께서는 승객용 긴 의자에 앉으셨고, 저는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제 뒤를 따라 들어오신 아버님께서 나란히 선 채로 물으셨습니다.
“알레, 무서웠느냐?”
“아니요, 아버님. 저는 단 한순간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두 분께서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저 혼자였거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다면, 첫 번째 흔들림에서 심장마비로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아버님께서 웃음기 섞인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아하! 죄가 많구만!”
화장실에서 나오신 아버님은 어머님께 말씀하셨습니다.
“엄마, 갑시다. 계속 비행합시다. 아직 갈 길이 남았으니.”
어머님께서는 아직 그 충격에서 회복되지 못하신 상태였습니다.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습니다. 다시 그 비행기에 오르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 어머님을 아버님께서 안심시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엄마, 갑시다. 인생에서 이런 경험을 한 번쯤 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