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9일 거행된 천주평화의 왕 참부모님 천정궁 입궁·대관식 제20주년 기념식에서는 오랜 기간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해 온 장기근속자들을 격려하는 시상식이 함께 진행됐다. TP매거진은 이를 계기로 천정궁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 장기근속자들의 이야기를 연이어 소개한다. 이번 호에서는 사카이 다카히사 천정궁 미화관리팀 부장을 만나, 주어진 일을 정성껏 수행하며 한자리를 지켜온 그의 20년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꿈에서 시작된 천정궁과 20년의 시간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천정궁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실까요?
2006년부터 미화 업무를 맡아 지금까지 같은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처음 맡은 일이 그대로 20년이 됐습니다.가족은 아내와 자녀 둘입니다. 아내는 지난해까지 다사랑 가정상담소 소장을 맡았습니다. 한국에 축복받고 오신 일본 식구님들이나 오래된 식구님들 가운데는 아내를 아시는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는 6,500가정이고, 딸과 아들 모두 서른이 넘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이곳에서 근무하게 될 것이라고 처음부터 예상하셨나요?
입궁·대관식이 2006년에 있었고, 2005년에 첫 채용 공고가 났습니다. 그때 지원했습니다. 사실 지원하기 전에 꿈을 하나 꿨습니다. 천정궁에서 제가 일하고 있는 꿈이었어요. 함께 일하던 사람이 여러 어려움 때문에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며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제가 “그래도 계속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꿈을 꾸고 2005년에 합격해 들어왔으니, 어려움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는 오래 일하게 되리라 짐작했습니다. 다만 나이가 있어서 20년까지 이어질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입사 초기 천정궁의 풍경은 어땠나요? 기억나는 분이나 일화가 있을까요?
처음 출근한 것이 2006년 1월인데, 그때 천정궁은 아직 건축 중이었습니다. 지금 같은 모습이 아니었지요.
본관 맨 위에 있는 참부모님 생애노정 그림도 당시에는 한창 작업 중이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오신 화가였던 것 같은데, 매일 천장을 올려다보며 붓을 들어야 하니 무척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천정궁이 세워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었는지를 실감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이 천정궁이고 부모님께서 계시는 곳이라는 생각에 늘 긴장이 됐습니다. 잘 모셔야 한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
근무했던 수많은 날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를 꼽는다면 언제일까요?
부모님께서 헬기 사고를 당하셨던 날입니다. 참아버님께서 성화하셨던 날도 물론 기억에 남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날이 가장 선명합니다.
그날 저는 일이 있어 공용차를 타고 수련원에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지금 게이트가 있는 자리까지 왔는데, 경호팀 직원 두 분이 차를 세웠습니다. 함께 가자고 하시기에 두 분을 태우고 길을 올라갔습니다.
헬기가 추락한 자리 바로 옆까지 갔는데도, 저는 그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들어가 보니 헬기가 있었습니다. 경호팀 직원들과 저까지 모두 차에서 내려 헬기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 순간 불길이 5미터쯤 확 치솟았습니다. ‘이대로 여기 있으면 죽겠구나’ 싶었습니다.

위험하겠다는 생각에 다시 게이트 자리까지 물러났습니다. 그곳에서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헬기가 추락한 것 같다고 보고드렸더니, 사무국장님께서 “그러면 부모님은 어떻게 되셨나요?”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그 헬기에 부모님께서 타고 계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빨리 부모님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현장으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부모님께서 계신 곳을 아는 분이 있어 그분을 따라갔습니다. 그곳에 부모님과 동승하셨던 분들이 모두 계셨습니다. 그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장마철이라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헬기 주변에는 물이 발목까지 차 있었고, 부모님께서 계셨던 자리도 온통 젖어 있었습니다.
제가 비교적 일찍 도착한 덕분에 먼저 참어머님을 안전한 곳으로 모셨습니다. 이후 사무국장님 지시로 천정궁에 한 번 다녀온 뒤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고, 마지막으로 구조되신 분을 옮겨드렸습니다. 다행히 그날 모두 무사히 구조되셨습니다. 제게 가장 깊이 남은 하루는 바로 그날입니다.
약속과 정성으로 지켜온 자리
천정궁에서 일하게 된 계기와 당시의 마음은 무엇이었나요?
직접 부모님을 모시는 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까운 곳에서 모실 수 있다는 것이 제가 이곳에 지원한 이유였습니다.
참아버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외부에서 온 VIP가 우연히 청소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배울 만큼 배운 훌륭한 사람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VIP는 청소하는 사람 한 명을 통해 부모님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것이 곧 간증이 되고, 부모님을 자랑하는 일이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하는 일 가운데서도 부모님을 간증하고 자랑할 만한 무언가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런 마음도 있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20년 동안 그런 기회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웃음) VIP와 직접 이야기할 일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그때 부모님과 마음속으로 나눈 그 약속을 지금까지 이어왔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결과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계속해 왔다는 사실 자체가요.
그 긴 세월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요?
말씀에 21년 노정, 7년 노정 같은 섭리 기간이 있지 않습니까? 한 번 약속했다면, 비록 개인적인 동기로 들어왔더라도 이곳이 천정궁이고 부모님을 모시는 자리인 이상 결국 하늘과 한 약속이 됩니다. 그 약속이 끝날 때까지는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약속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입사 전에 꾼 꿈도 있었고요. 계시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그런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물론 어려움은 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하기 싫은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럴 때도 제가 한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고 마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모시는 일뿐 아니라, 청소 같은 일도 정성껏 하면 만물이 좋아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만물이든 사람이든 일일이 물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정성을 들이면 기뻐한다는 것이 전해집니다. 그런 것이 보람이 됐습니다. 약속만으로 20년을 버틸 수는 없습니다. 그 작은 기쁨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감사가 생겼고, 그것이 이 일을 여기까지 이어온 힘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하늘부모님의 집에서 이어가는 모심
부장님께 천정궁은 어떤 의미인가요?
평범한 말이지만, 한마디로 ‘하늘부모님의 집’입니다. 참아버님 말씀을 보면 이곳에 천정궁이 있지만 해양천정궁도 있고, 당시에는 스위스에도 천정궁을 짓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모든 곳이 하늘부모님의 집이 되어야 하고, 지구 전체가 하늘부모님의 집, 말하자면 천정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시작이 바로 이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이 길을 함께 견뎌준 가족에게 이 자리를 빌려 한 말씀 남기신다면요?
저는 이곳에서 일하고 가족은 서울에 있습니다. 사실 그전부터도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가정 출발했을 때는 세계일보 지국을 맡고 있었고, 지국을 하다가 브라질 자르딘 수련에 갔습니다. 당시 자르딘에 간다는 것은 직장도 없고 집도 없는 상태로 떠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내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렸는데도 함께 자르딘에 갔습니다.
이곳에 취직해 오면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집에 없으면 자녀들은 누가 돌보겠습니까. 아내가 다 감당한 것이지요. 가정은 아내가 지켜왔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큰 걱정 없이 이곳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자녀들이 지금까지 잘 자라준 것까지, 그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참부모님께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수련원에 들어가면 부모님의 노정을 배우고, 그 이야기에 감명받는 분들이 많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과연 부모님께서 그 고생길을 가셔야 했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원래 부모님께서는 영광의 왕으로, 왕의 왕으로 오실 예정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고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례요한격 인물이 고생해 기반을 닦고, 부모님께서는 그 기반 위에 오시면 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만약 부모님께서 그렇게 오셨다면, 우리가 부모님의 가치를 얼마나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부모님께서 고생길을 가시게 된 것은, 어떤 면에서는 저희에게 부모님을 알아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부모님 앞에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해드려야 할 것은 해드리면서 더욱 잘 모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